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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장로병원 한인의사들-5] 김성호 산부인과 전문의

한인타운에 있는 김성호 산부인과 전문의의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입구 쪽 거울에 적혀있는 'Children are a Gift from God'이라는 문귀다. "산부인과 의사는 산모를 돌보는 것과 똑같이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태아도 돌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유산을 하겠다는 산모가 올 때마다 거울의 글귀를 읽어보라고 한다. 그것도 안되면 30분 혹은 1시간 이상씩 앉혀 놓고 태아의 자료 사진을 보여 주면서 설득한다. 9시간을 비행기로 날아 온 남미의 한 한인 여성을 설득시켜 마음을 돌렸을 때 너무 기뻐서 "아기를 공짜로 받아 주겠다"고 약속했고 그것을 지켰다며 흐뭇하게 웃는다. 김 산부인과 전문의는 어려서 부모따라 이민 온 1.5세다. UC 어바인(생물학과 화학)을 거쳐 시카고에 있는 로욜라 의과대학을 졸업했다(86년). 인턴십은 이곳 USC 병원에서 1년동안 일반내과를 했고 레지던시는 다시 시카고로 가서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에서 산부인과를 4년동안 했다. 마친 다음 그 병원의 헬스케어 컴퍼니에서 10년 동안 산부인과 의사로서 주로 미국인 산모들을 돌봤고 가주로 돌아와 활동한 지는 10년이 넘는다. "할리우드 장로병원과의 인연은 2000년 부터 시작됐다"며 "한국사람이 병원을 인수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한인 커뮤니티로서 참 좋은 일이고 또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한다. 백인 환자는 백인 의사가 편하듯이 한인도 한인 의사가 편한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인종차별 차원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정서가 아니겠냐고 반문한다. "그래서 미국에서 아시안 남성들이 의사되기가 가장 어려워요. 의과대학에서도 학생을 뽑을 때 인종 비율을 고려하기 때문이지요." 인구비율로 볼 때 백인(45%) 흑인(12%) 아시안(8%) 그리고 나머지가 히스패닉으로 가장 적은 데다가 대부분 아시안 남성들은 한인들과 같이 의사가 되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할 수 밖에 없다. 김 전문의는 성적이 항상 상위권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은 '99% 노력형'이었다며 겸손해 한다. 어려서부터 밤을 새면서 어항속의 물고기가 알을 낳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면서 희열을 느낄 정도로 생명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노트에 그림을 그리면서 엄마들이 힘들어하지 않고 아기를 낳는 방법을 나름대로 구상(?)하고 연구한 적도 있다며 웃는다. 또 세상에서 가장 좋아한 곳이 도서실이었다. 온갖 가능성이 잠재해 있는 신비로운 세상처럼 느껴졌다. 대학교 때 친구들은 생스기빙 연휴라고 여기저기 찾아 다닐 때도 연휴내내 도서실에서 지낼 정도였다.'공부가 취미라야 의사가 될 수 있다'는 전형적인 샘플 케이스다. 전공을 산부인과로 택한 것은 다른 병은 아플 때 고통 속에서 의사를 찾지만 산부인과 만은 기쁨과 축하 속에서 환자가 찾아오기 때문에 훨씬 의사노릇 하기가 즐거울 것 같았다고 말한다. "생명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한 가정을 이루게 해주는 것 이상으로 보람있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일 중독'이란 말까지 듣는다. "일년에 1000명 정도의 아기를 받아 낸다"며 환하게 웃는 김 전문의는 "한번 한다고 결심하면 성격상 올인하게 된다"며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자신의 일에 매우 흡족함을 감추지 못한다. 글.사진 김인순 기자

2010-03-08

[할리우드 장로병원 한인의사들-4] 이영직 일반내과 전문의

"할리우드 장로병원과는 올해부터 인연을 맺게 됐어요. 저로서는 보다 많은 한인 환자를 돌볼 수 있어 좋습니 다." 이영직 박사(일반내과)는 경북의과대학 졸업(1992년) 후 곧바로 미시건주 웨인 주립의과대학에서 인턴 1년 레지던트 2년을 마치고 미시건 의과대학에서 호흡기내과의 연구와 임상 펠로우십을 하면서 주로 미국인 환자를 대했다. 한인 환자를 대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LA로 와서 굿 사마리탄병원에 처음 개인 사무실을 오픈하면서 부터다. 현재의 사무실인 6가와 아드모어 코너의 메디컬 빌딩으로 옮긴 것은 1년 후인 2004년이다. "미시건 의대에 있을 때 기억이 생생해요. 환자 스케줄에서 어느날 한인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는 가슴이 쿵쿵 뛸 정도로 흥분이 됐어요. 저로서는 미국와서 첫 한인환자를 보게 됐기 때문이지요." 그 때 느낀 것이 '환자가 편하면 의사도 편해져서 치료가 더 잘 된다'는 것이었다. 이곳 LA로 처음 올 때의 심정도 마찬가지였다고 회상한다. "일반내과를 택한 것은 제 적성에 맞아서 였어요. 주치의로서 환자와 가장 많이 그리고 친밀하게 만날 수 있거든요. " 의사에게 환자는 '치료 대상'이기 앞서 함께 느끼는 '공감하는 대상'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환자가 '의사들은 이윤만 추구한다'고 말할 때 가장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또 이 박사는 남가주 한인의사들의 모임인 '한인의사협회'에서 홍보담당 이사를 맡고 있다. 주류 의학계와 한인의사들과의 연계에 관심이 높기 때문이다. "미시건에 있을 때 안타까왔던 것이 모든 치료가 백인환자 위주로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고 말한다. 백인 외의 그룹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이 흑인 그 다음이 여성 그리고 최근의 라틴계 순이다. 아시안에 대한 관심이 희박하다. 여기엔 적극적인 홍보 밖에 없다. "아시안 이민자들의 질병은 백인들과 다르기 때문에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것이 위암과 아시안 여성들의 골다공증이다. 이민 오기 전의 식습관 때문이다. 특히 골다공증은 백인여성보다 심각하다. 어려서 우유를 충분히 섭취하지 않은데다가 운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오바마 의료개혁안에 대해서는 '케네디 아이러니'를 말한다. 오랜동안 의료개혁을 위해 애쓴 장본인인 케네디 상원의원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죽음)이 그 일을 성취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했기 때문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불리한 변수들이 많아졌다"며 "100년 만에 찾아온 기회로 다시 오기는 힘들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다. "현대의학은 예방의학이에요. 정기적인 검사를 해야하는데 보험없이는 힘든 얘기지요." 특히 일반내과 주치의로서 지금도 보험없는 한인이 많은데 앞으론 더 할 것 같다며 염려가 크다. 글.사진 김인순 기자

2010-02-22

[할리우드 장로병원 한인의사들-3] 노규상신경외과 전문의

"60년 당시 의대생들 사이에서만해도 신경외과를 한다고 하면 왜 힘들고 보람없는 과를 선택하느냐는 말들을 할 정도로 인기가 없었어요(웃음). 그만큼 새로운 분야였다는 얘기지요." 그러나 70년대부터 마이크로 테크닉이 개발되면서 지금은 의학계에서 가장 놀랍고 또 빠른 속도로 의술이 발전하는 분야가 되었다고 노규상 신경외과 전문의는 말한다. 노 전문의는 서울의대를 졸업(66년)하고 그 해 피츠버그에 있는 세인트 프란시스 저너럴 하스피틀에서 인턴(1년) 과정을 마친 후 보스톤의 터프츠(Tufts) 의과 대학의 뉴잉글랜드 메디컬센터에서 레지던트로 일반외과(1년)와 신경외과(6년)를 했다. 74년 LA의 카이저 병원에서 3년 정도 근무하다가 지금의 글렌데일의 메디컬 빌딩에 개인 사무실을 오픈해 주로 미국인 환자를 치료해 왔다. 한인 진료는 2년 전 할리우드 장로병원과 인연을 맺고 매주 수요일 이곳 할리우드 장로병원 사무실에서 하고 있다. 신경외과에서는 우리 몸의 가장 바탕이 되는 신경을 다룬다. 신경의 총 본부라 할 수 있는 뇌신경을 비롯해 척추와 척수 그리고 여기서 퍼져나가 손과 발가락 끝의 미세한 말초신경까지 다 해당된다. "신경외과 전문의들이 신체의 미스테리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두뇌 신경인데 그 이유는 가장 빨리 성장하여 10세 정도만 되면 모두 자라서 한 번 손상되면 재생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라며 "몸의 다른 부위는 조그만 상처가 나도 나이와 상관없이 계속 재생 쪽으로 안간힘을 쓰는데 몸에서 가장 중요한 사령탑인 두뇌세포만은 빠르게 성장한 후 재생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창조의 불가사의'라며 웃는다. 그래도 고마운 것이 신경외과 분야에서 2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20세기 초에 '신경외과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비 쿠싱(Harvey Cushing)이 당시만 해도 '뇌수술하면 죽는다'는 인식을 바꾸어 놓을 정도로 놀라운 뇌수술의 방법을 찾아내 희망을 주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이와 때를 맞춰 발전한 마이크로 테크닉이다. 가는 바늘과 같은 신경조직을 강한 밝기로 3배~5배로 확대해 볼 수 있게 되어 육안으로 하는 뇌수술을 비롯한 신경 수술의 한계를 단번에 뛰어 넘게 했다. "제가 의대생시절에 신경외과가 인기없던 이유도 뇌수술을 하면 죽거나 살아도 정상 생활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의사로서 보람도 적기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어느 분야보다 보람이 크다"고 말한다. 예로 20대 젊은 여성이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로 왔다. 머리에 출혈이 있고 뇌수가 가득찬 상태다. 그러나 지금은 신경외과 쪽에서는 그 부분에 가느다란 관을 집어 넣어 천천히 뇌수와 피를 뽑아내는 간단한 응급처지로 치료한다. "그 여성은 지금 결혼해서 자녀까지 낳았고 모든 기능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행복하게 하고 있다"며 30~40년 전만해도 이같은 결과는 기대하기 힘들었다며 뿌듯해 한다. 뇌수술 뿐아니다. 현재 환자 중에 가장 많은 것이 척추수술 특히 디스크 수술일 정도로 척추신경 쪽의 치료가 신경외과 쪽에서 많이 다룬다. "척추관계 수술은 뇌수술보다 더 일찍 시작된 데다가 이 분야 역시 발전이 빨라 이제는 절개 수술없이 하는 신경외과 수술로 위험부담도 없다"고 말한다. 우리 몸에 가장 중요한 신경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노 박사는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라며 간단명료하게 답한다. 글.사진=김인순 기자

2010-02-01

[할리우드 장로병원 한인의사들-2] 최명혜 심장내과 전문의

심장전문의 중에는 여성이 많지 않다. 그 중에서도 풍선시술을 전문으로 하는 여의사는 더욱 적다. "의대생일 때 저의 교수는 손끝이 민감하다고 뇌 전문의를 권했어요. 그러나 제 적성상 논리적인 숫자로 하는 것이 맞았고 암기는 자신 없었어요. 뇌쪽은 가장 암기가 많은 분야거든요(웃음)." 이화여고 다닐 때 네바다주로 가족이 이민을 왔다. 80년대 초에 네바다주에서 유일한 의대인 네바다 주립대학 의대를 졸업한 후 가주로 와서 로마린다 의대와 굿 사마리탄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와 현재 하고 있는 풍선시술 전문의 수련을 마쳤다. 그 후 세인트 빈센트와 굿 사마리탄 병원에 개인 사무실을 열고 환자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할리우드 장로병원으로 사무실을 옮긴 지는 3년이 된다. "물론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심장 쪽은 일초를 다투는 급박한 상황이기 때문에 처음 개업할 때부터 종합병원 안에 사무실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환자 편에서도 응급시 구급차를 따로 부를 필요없이 그대로 병원 수술실로 가면 되니까요." 평소에도 한국제품을 애용했고 한인이 운영하는 상점을 찾아다닐 정도로 한국에 애정이 많았다. 15년 있던 세인트 빈센트 병원에서 이곳으로 온 것도 '주인이 한국사람'이란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사무실 이전 후에야 알게 됐지만 10년 전 쯤에 이 병원의 대표인 차광렬 박사의 부친을 제가 치료한 적이 있다는 걸 알고 인연이라 좋아했다"며 "특히 한인 환자들을 위해 한인 주방장이 따로 있어서 그 점이 더욱 마음에 든다"고 웃는다. 80년 초기만 해도 심장 풍선 시술은 새로운 기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심장수술 10건 중에서 1건 만이 절개수술을 하고 나머지 9건은 풍선시술로 치료할 정도로 발전했다고 설명한다. 전신마취를 하는 절개수술과 달리 가느다란 줄이 들어 갈 만큼 피부 마취만 하면 된다. 따라서 환자의 회복이 빠른 잇점이 있다. 줄에 달린 작은 풍선으로 막혀버린 심장 판막이나 혈관 혹은 다리의 동맥 등을 여는 이 시술을 최 전문의는 20년 가까이 되는 동안 500 케이스가 넘게 시술했다. "강한 방사선 아래서 수술하기 때문에 방사선 차단을 위한 특수 철판 가운을 입고 수술실에 들어가요. 건장한 미국 남성 의사들도 그 무게때문에 수술 후에 몸이 땀에 젖을 정도에요." 그러나 최 전문의는 그렇게 힘든 줄 모르겠다며 '아마도 적성같다'며 웃는다. "처음 의대 인터뷰를 할 때 '결혼할 것이냐?' '아기를 낳을 것이냐?'하는 질문을 직접적으로 교수들이 했어요. 그 이유는 의대쪽에서 볼 때 열심히 가르치고 투자해 놓아도 여성들의 경우 결혼생활과 밸런스를 맞추기가 힘들어 힘들게 배운 지식을 활용치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지금은 이같은 질문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며 그만큼 그 당시만해도 여성이 의사가 된다는 것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지금은 의대생 중에서 반이 여학생이 차지할 정도로 유능한 여 의사들이 계속 배출되고 있다며 흐뭇해 한다. 그러나 여성으로서 결혼생활과 자신이 힘들게 배운 지식을 밸런스 맞추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의지와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는 점도 지적한다. "특히 심장쪽은 새로운 시술이 계속 업데이트 되기 때문에 항상 '학생'이라 생각하고 공부하는 것을 즐기지 않으면 해내지 못할 것"이라며 "죽을 때까지 다 못배우고 가는 것이 바로 의사 직업"이라고 말한다. 김인순 기자

2010-01-17

[할리우드 장로병원 한인의사들-1] 송수일 정형외과 전문의

진료진도 오랜 경험의 한인 의사들로 구성되어 있어 ‘친 환자 분위기’로 편안함을 준다. 업데이트 된 의료시설 속에서 한인 환자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한인 의사들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할리우드 장로병원과의 인연은 82년 동부쪽에서 가주로 처음 와 개업하면서부터 시작됐어요. 한국사람이 병원의 주인이 되니 더욱 제 집처럼 느껴집니다." 송수일 정형외과 전문의는 무엇보다 한인 커뮤니티에 뭔가 봉사하려는 병원 측의 배려가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68년 경북의대를 졸업하고 다시 4년동안 정형외과 전문의를 수료한 송박사가 미국에 온 것은 74년이었다. 워싱턴 DC에 있는 워싱턴 하스피틀 메디컬 센터에서 일반외과 인턴과 레지던트를 한 후 보스톤의 타프츠(Tufts) 의과대학에서 물리재활 전문의 카니하스피틀에서 매스제너럴 정형외과 프로그램을 끝내고 이 곳 가주로 왔다. "당시 윌셔에 개업을 했는데 여러 면에서 할리우드 장로병원이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입장에서나 또 한인 환자입장에서나 편리하다고 생각했지요. 그 인연이 지금 28년째가 되네요." 정형외과 쪽이 의사로서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의사로서 볼 때 그 결과를 가장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것 또한 정형외과이기 때문에 보람도 그만큼 크다"며 해 볼 수록 "수술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며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팔이 부러져서 움직이지 못하던 환자가 수술을 받고 제 앞에서 자유롭게 움직여 보일 때가 정형외과 의사로서 아마도 누구나 느끼는 가장 행복한 순간일 것"이라며 특히 난해하고 힘든 경우일수록 그만큼 환자의 고통도 크게 느껴져 더욱 도전하고 싶어진다고 말한다. 기억에 남는 환자 케이스에 대해서는 "30년 넘게 환자를 보아서 일일이 다 기억하기는 힘들다"며 2~3년 전 무릎수술을 성공적으로 해 준 흑인 여성을 떠올린다. 체중이 300파운드 이상이 되어 수술 자체도 힘이 들 뿐 아니라 위험성도 높기 때문에 정형외과 의사들이 꺼리던 환자였다. 그 환자가 송박사에게 왔을 때 그 환자는 이미 여러 의사들을 거친 후였다. 일단 체중을 어느 선까지 줄인 다음에 수술을 해보자는 의견이었기 때문에 거의 낙담상태였다. "특히 흑인들의 경우 과체중은 유전적 요소가 많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불가능하다"며 사실상 그들 입장에서는 '잔인한 요구'라고 설명한다. 송박사는 중년이 넘어 허탈해 하는 그 환자를 본 순간 '그러면 내가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사실상 힘든 수술 끝에 다시 혼자서 걷게 됐다. "회복된 후 찾아와 어린애처럼 내 앞에서 '닥터 송 이것 봐요'하며 걸어 보이고 좋아할 때 정형외과를 하길 잘했구나 뿌듯함을 느꼈지요." 그러나 간혹 상처를 주는 환자들도 많다고 털어 놓는다. "누군가 그랬다지요? 우리 의사들은 '상처받은 치유자'라고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환자를 치료해 주지만 그 환자로부터 마음의 상처도 받기 때문이지요." 한인의사보다 미국인 의사가 더 실력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찾아간 후 치료가 안되자 다시 한인의사를 찾아오는 환자 수술을 꼭 해야 한다고 했을 때 돈을 벌기 위해 그런 것이라 편견을 갖는 환자 무리하게 '기적'을 요구하며 무능한 의사로 몰아부치는 환자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며 씁쓸하게 웃는다. 환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우리 의사는 상인이 아니다"며 짤막하지만 의미 깊은 말을 남긴다. 글.사진 김인순 기자

201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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